인천 가는 날이다. 1년에 한번 있는 올티 행사. 8월 일정이 빡빡한 고로 무리를 해가면서 15일을 추천했다. 이런 날일 수록 아침에 눈이 잘 떠진다. 어제 무리를 했지만 일어난 시각은 7시 30분.
피곤한 눈을 부비면서 컴퓨터에 앉아 웹 서핑을 시작한다. 잠시후 나타나는 MSN 창. 멍멍이었다. 밤을 샜단다. 모디아 고장이란다. 그래서 모임을 깨자는 이야기.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일단 취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이야기들. 냐디까지 가세해서 의논했다. 최종 공지 직전에 문제 발견. 소류님께 연락 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최종 단계에서 급선회. 멍멍은 그냥 자고 나머지 사람들로 인천 정모를 강행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성북역으로 나섰다. 역에 도착하니 마침 와 있는 용산행 전동차. 오랬만에 타본다. 사람은 적고 에어콘 바람은 시원하다. 도착무렵에는 몸 속까지 한기가 밀려온다. 그것도 잠시 용산에서 전동차를 갈아타고 약속 장소인 신도림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열기가 밀려온다. 지친다. 역시 어제 무리하고 제대로 잠도 못잤으니. 이제는 20대의 체력이 아니다.
신도림에서 지루를 만나고 콩나물 전동차를 한대 보내자 바로 냐디가 나타난다. 그녀는 행운아일까? 냐디가 나타나자 마자 텅빈 인천행 전동차가 등장. 전동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열기가 싹가신다. 하지만, 인천 가는 길은 멀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전동차의 털컹거림이 멈추고 드디어 우리는 내렸다. 여기가 어딘가? 목적지 동인천 역은 공사중이었고 완전히 다른 역이 되어있었다.
역사를 나서자 소류님이 한손에는 커피와 또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드신채 기쁘게 맞이하신다. 아직 나오지 않으신 향기님과 냐암. 휴대전화로 연락하니 두 분 다 오시는 중. 쇼핑몰 에어콘에 잠시 몸의 열기를 떠넘기고 향기님을 맞으러 역사 앞으로 나섰다.
늦는 냐암을 뒤로 하고 향기님을 만나 첫번째 장소인 대야 냉면집으로 향했다. 역시 입구부터 호객꾼들로 가득하다. 애써 눈길을 외면하고 우리의 목적지으로 부랴부랴 발길을 옮겼다. 늦게 온 냐암까지 합류해 냉면 6그릇과 추가 사리 2그릇을 해치우는 전과를 올렸다.
냉면집을 뒤로한채 이번에는 언덕위 카페, 시리우스로 향했다. 물론 중간에 카페에서 먹을 간식으로 뻥튀기를 사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 몇번 골목길을 헤맸지만 에어콘 시원한 향기님의 애마 덕분에 고생은 하지 않았다.
컹컹컹. 진도개들의 시끄러운 손님맞이 인사를 들으며 항시 쓰던 정원 옆으로 가려고 했지만 뜨거운 열풍은 우리를 다시 건물 안으로 내쫓았다. 편한 소파에 기대 시원한 물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순간이었다. 어제 무리를 한걸까?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 편한 소파. 이 둘의 조화는 그 무엇도 나를 잠으로부터 구해줄 수 없었다.
잠의 포로가 됐다 풀려나자 소류님은 행방불명되셨고, 사람들은 무척이나 잘 자는 내가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는거지 사람 무안하게.
꺼내놓은 뻥튀기를 모두 먹어버리고 세번째 목적지인 닭강정 집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물론 진도개들의 작별 인사를 들으면서 말이다.
분위기가 확 바뀐 재래 시장길을 지나 닭강정 집에 도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 우리는 포장 손님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가게 안에도 만원이라 5명이나 되는 사람이 앉을 자리는 없었다. 잠시 에어콘 바람에 의지하며 기다리자 자리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주문은 닭강정 1마리, 통닭 반마리. 처음에는 무서운 속도로 줄더니 곧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냐디의 반마리 더라는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는 향기님. 냐디는 이것은 주문하라는 의미로, 향기님은 이것만 있어도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이건 같은 말이라도 뜻이 다르다. 한국말은 끝까지 잘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이래 나온 것이리라.
반마리가 나왔지만 정작 남아있던 닭마저도 다 먹지 못한채 닭강정에 한이 있는 향기님이 포장해 가져가는 것으로 중론이 모였다.
짧지만 알찼던 인천의 여름을 뒤로 한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인천이 집인 냐암을 보내고, 향기님의 차를 얻어타고 모두 서울로 돌아왔다. 홍대 지하철 입구에서 향기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히 세명 모두 방향이 같았다. 2호선을 타고 잠실로 향했다. 제일 먼저 신당에서 내가 내렸다. 아마 냐디는 애인이 있는 성수로, 지루는 버스가 있는 잠실로 갔으리라.
아직 햇살이 뜨겁지만 조금씩 여름의 빛을 읽어가는 8월의 중순에 가본 인천. 올해는 세가지 목적을 모두 이뤘기에 다소나마 적은 인원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내년에 다시 인천의 여름을 맛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다시 올해 느꼈던 그 맛들을 다시 맛보고 싶다.